언론보도
술 중독, 생각 중독…벗어나려면 스스로 중독됐음을 인정해야
Name관리자
Date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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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세월이 더 빨리 지납니다. 새해, 결심을 하고 각오를 다지지만 자기 조절력이라는 마음의 힘이 받쳐 주어야 결과가 좋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오래지 않아 결심은 무너지고 각오는 녹아내릴 겁니다.

“결심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애교입니다. 중독 진단이 붙으면 심각합니다. 빨리 치료해야 합병증을 막습니다. 자기 조절력이 마비된 병이어서 그냥 놔두다간 안 보여도 속으로 썩습니다. 마약 중독도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 술 중독입니다.

한국인은 정말 술을 많이 마십니다. 전 세계에 소문이 났습니다. 주량도 대단하지만, 술을 고르는 안목도 높고 술값은 별로 아끼지 않습니다. 위스키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술집에서 고급 위스키를 잔이 아닌, 병으로 주문하는 사람은 거의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30년 숙성, 최고급 위스키도 “독하다!”고 하면서 맥주와 섞어 폭탄주를 만들어 소비합니다. 그 순간 위스키의 본질은 희석되어 증발합니다. 
건강에도 관심이 커서 간경변, 간암을 두려워합니다. 술은 간은 물론이고 뇌에도 작용해서 알코올성 치매, 심장에는 심장병을 키웁니다. 취하면 넘어져 다치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몸의 ‘음주 운전’입니다. 마음의 욕정이나 공격성이 거침없이 올라오면 사고를 칩니다. 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네 가지 면에서 취약합니다. 감정 인지, 자존감, 대인관계 관리, 자기 보살핌 능력이 떨어집니다. 중독은 노예 상태여서, 해당 물질에 몸과 마음이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합니다. ‘중독’의 정의가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도 포함한다면, 특정 생각에 굳게 사로잡힌 상태도 중독, 즉 생각 중독입니다. 역시 만만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인데 생각이 굳어지면 판단력에 장애가 생깁니다. 자신이 깎아낸 렌즈로만 보면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고집(固執), 아집(我執), 편견이 ‘생각 중독’의 대표입니다.
벗어나려면, 술이든 생각이든, 이미 중독 됐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중독자는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요 방어 무기는 합리화입니다. “나는 아니다, 업무 활성화와 부서 단합을 위해, 다들 그렇게 한다. 많이 마셔도 전혀 무리가 없다.”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술이 건강에 나쁘다면 내가 다 마셔서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우스갯말도 웃으며 덧붙입니다. 거짓 논리를 교묘하게 내세워서 합리화하면서 빠져나갑니다. 결국은 자신까지도 속이는 행위입니다.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가 말한 바 있습니다. “합리화는 논증으로 자신을 속이는 행위일 수 있다.” 생각 중독도 그러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합리화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밀어내고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금주동맹(禁酒同盟)’에 참여하면 술 중독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모인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가 비슷해서 섣부른 자기 합리화로는 집단이 주는 심리적인 압박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포용적인 분위기에서 서서히, 중독자는 중독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강한 체하는 허세에서 벗어나며, 주변의 권고, 제안, 충고에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술의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더 마시는 역설적 행동도 멈추게 됩니다. 중독자가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취약성을 감추려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 방어기제를 건강한 기제로 바꿀 수 있다면 큰 성공입니다.

반면에, 생각 중독의 치료를 도와줄 ‘금주동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생각 중독자의 특성상 찾아가지 않고, 오히려 비판하고 공격할 겁니다. 자신의 견해를 지지해주는 집단을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술 중독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협합니다. 생명이 위협받는 일을 예방, 차단하고 의학적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몸이 살아야 마음도 고칠 여유가 생깁니다. 술 중독을 치료하는 의사는 축구 경기의 리베로와 같습니다.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환자 상태에 맞추어서 치료의 방법과 내용을 적절하게, 적시에 조율해야 합니다. 금주동맹과 의학적 치료의 도움을 받아 술 중독자 스스로, 자신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고 견디고, 자존감을 올리며,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자신을 돌보고 통제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성공입니다.

생각 중독자는 병원에 오지 않습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생각 중독에 시달린다면 매우 난감한 일입니다. 찾아와도 어렵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관계는 갈망하지만, 도전받는 관계는 회피하거나 적대시하는 성향이 커서 다른 생각을 배척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정신분석가는 궁금할 뿐입니다. 이 사람이 쓰고 있는 방어기제는 무엇일까, 어려서 받았을 수도 있는 트라우마가 지금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직접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아주 오래 듣지 않고는 해석의 문 앞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가끔 용감하게 해석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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